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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바 르포: 반정부 시위의 미래, 암호화폐에 답이 있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778 작성일 19.05.07  09:08
Murder, Censorship and Syria: Crypto and the Future of Uprisings

바셀 칼타빌

코인데스크 소속의 레이첼 로즈 오리어리 기자는 정세가 불안한 시리아 북부 로자바(Rojava) 현지에서 암호화폐가 어떻게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지를 취재하고 있다. 앞서 보내온 르포에 이어 두 번째 기사를 소개한다.


2011년 8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해커스페이스 아이킬랍(Aikilab)에 무장 경비대가 급습했다.

예술과 기술에 대한 관심과 전문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교류하는 공간이던 아이킬랍에 들이닥친 경비대는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소파까지 어느 하나 남겨놓지 않고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이후 아이킬랍의 문은 굳게 잠겼고, 이듬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독재 정권은 아이킬랍의 공동창립자 바셀 칼타빌(Bassel Khartabil)을 체포하고 고문한 끝에 처형했다.

당시 시리아에는 훗날 내전으로 이어진 민간인들의 반정부 시위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어 그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었고, 아이킬랍의 급습과 칼타빌의 체포를 누가 명령하고 주동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 혼돈의 상황 속에서도 칼타빌은 인터넷의 이중성과 관련한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인터넷은 시리아를 폭정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대중을 집결하고 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정부도 인터넷을 이용해 대중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orld Wide Web Consortium) 출신이자 지금은 바이낸스 랩이 발굴한 님 테크놀로지(Nym Technologies)에 소속된 해리 할핀 박사는 칼타빌이 연행되기 전 자신에게 이런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에서 혁명이 발생한 지 몇 년이 지났고, 그사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오늘날 시리아에서는 대리전이 이어지고 무장 세력이 활동하지만, 할핀 박사는 칼타빌이 자신에게 해준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자바 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은 감시받고 있고, 공격받게 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로자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탈중앙화와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오픈소스 기반 사회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칼타빌은 일반 대중의 힘과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처음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실험을 벌였다. 이러한 칼타빌의 구상은 오늘날까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시리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IS 거점을 탈환한 뒤에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형평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다.

칼타빌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존 필립스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기술의 시대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고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칼타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필립스는 칼타빌이 사실 암호화폐를 그다지 깊이 들여다봤던 것은 아니지만, 밀키미스트(Milkymist)의 초기 투자자였다고 밝혔다. 밀키미스트는 오픈 하드웨어의 일종으로, 이후 카난 크리에이티브(Cannan Creative)에서 최초의 비트코인 ASIC 채굴기를 제작할 때 밀키미스트를 개조해 사용하기도 했다.

“칼타빌은 암호화폐 업계의 창시에 일조했다. 그의 영향은 매우 분명하다.” – 존 필립스

 

모질라(Mozilla)의 미첼 베이커가 2010년 아이킬랍에서 발언하는 모습

 

기술의 이중성

칼타빌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억압하기도 하는 기술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또 로자바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술 교육 기관 양성 사업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기서 잠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 기술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 아랍의 봄이 휩쓸었을 때, 소셜미디어는 반정부 목소리를 퍼뜨리는 주요 수단이었고,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탄압적인 정권에 대항하는 시위와 반란을 조직했다.

국민들의 시위는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정권은 이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혁명이 전쟁으로 변하자 당시 중국 베이징에 머물던 필립스는 칼타빌에게 다마스쿠스를 떠나라고 재촉했다. 칼타빌은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사는 곳에 폭탄이 떨어졌어. 나는 어머니를 찾아야 해. 2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아버지께 물도 갖다 드려야 해.”

사실 칼타빌이 아이킬랍을 만들게 된 이유도 이런 그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킬랍은 해커들을 위한 공간이다. ‘해커’라는 단어가 포함돼 안 좋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필립스의 설명대로 일반인들이 모여 예술이나 기술 따위를 연구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오히려 지역 문화센터와 비슷하다. ‘아이킬랍’은 칼타빌이 키우던 거북이의 이름인데, ‘사랑’을 뜻하는 중국어 ‘愛(중국어 발음으로 아이)’와 ‘에너지’를 뜻하는 ‘氣(중국어 발음으로 키 혹은 치)’를 합친 것이다.

“아이킬랍의 뜻은 사랑 에너지, 즉 힘이나 에너지를 모은다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인류와 사회를 돕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싶었지, 어려움을 더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 존 필립스

필립스가 칼타빌을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2011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크리에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일정 기준 아래서는 창작물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 콘퍼런스였다.

2011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칼타빌, 필립스, 조이 이토

 

이후 칼타빌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을 마련하기 위해 할핀 박사에게 연락을 취해 도움을 받았다. 할핀 박사는 칼타빌에게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국제 제재로 시리아에서는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차단돼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사드 정권이 시리아의 통신 인프라를 통제하고 있었다. 칼타빌은 시위대가 안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자체 통신망이 없을지 문의했다. 칼타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정부의 검열에서도 자유로운 도구였다.

할핀 박사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이후 중동 지역 인권 운동가들에게 기술 지원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칼타빌이 체포되기 전 IRC의 해커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질문을 떠올렸다.

“시리아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가?”

 

지도자를 제거하라

그럼에도 할핀 박사는 칼타빌과 그가 함께 했던 일들은 ‘실패한 개입’이라고 평가했다. 칼타빌이 이끌었던 시민운동은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었다. 참여자들 사이의 통신 내용이 모두 노출되어 있었다. 끝까지 칼타빌을 도왔던 할핀 박사를 비롯한 해커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칼타빌은 개방성과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부에서는 이 또한 하나의 위협으로 봤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정보와 기술은 마술과도 같다. 무엇이든 증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칼타빌은 컴퓨터 공학이라 불리는 이 마술을 어떻게 부리는지 알고 있었다. 하드웨어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끝내 무사할 수 없던 것이기도 하다.” – 해리 할핀

필립스도 구체적으로 칼타빌이 어떻게 체포됐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가 갖춘 기술 전문성 때문에 아사드 정권의 표적이 됐을 거라고 말했다. 칼타빌은 2012년 3월 15일 수감됐다. 수용소에서 칼타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시 불분명하지만, 한동안은 외부와 소통도 한 것으로 보인다. 필립스는 칼타빌이 복역 기간 중 일부는 수용소의 기술 관련 업무를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칼타빌은 2015년 처형됐지만, 그의 사망 사실은 2017년이 돼서야 알려졌다.

할핀 박사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운동이 정부의 감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서구의 해커나 운동가들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칼타빌은 그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또 어느 시위에서나 칼타빌처럼 두드러지게 시위를 이끄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시리아 혁명 당시 이런 활동가들은 신속하게 색출, 제거됐다. 그 과정에서 시위를 이끄는 지도자는 사라졌다. 결국 훨씬 무모한 성향을 지닌 인물이 시위를 이끌어나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암호화 기술, 어떻게 쓰이나

할핀 박사는 코인데스크 인터뷰에서, 감시나 검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은 모든 정치 활동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모든 정치 활동의 전제 조건이자, 모든 정치적 해방의 전제 조건이다.”

할핀 박사는 칼타빌의 사례를 보면서 탈중앙화 도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타락한 정권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시민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서양의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도구들은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 너무 늦기 전에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활용해 정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돈을 손에 넣는 시민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 사용하기도 점점 쉬워지고 있다. 이처럼 일반 국민에게 탈중앙화된 암호화 기술을 제공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정치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이더리움 기술을 접목한 스테이터스(Status)처럼 탈중앙화 통신 도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많다. 그러나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도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할핀 박사는 이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한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로자바가 시리아에서 독립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로자바 주민 대부분은 시리아의 통신 네트워크인 시리아텔(Syriatel)에 의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로자바의 통신 데이터 중 상당 부분은 터키 영토를 통과해야 한다. 터키는 이 점을 이용해 지난해 로자바의 도시 아프린(Afrin)을 점령했을 당시 모든 인터넷과 전화 통신선을 차단해 로자바 시민들을 고립시킨 적이 있다.

여전히 로자바는 상당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할핀 박사는 로자바 주민들과 기술자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앞으로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로자바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탈중앙화된 사회를 구축하고자 한다. 로자바가 추구하는 방향은 모두에게 공개된 소프트웨어나 블록체인 커뮤니티, 그리고 고급 기술 전문가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는 것은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기술자들이 개발하는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번역: 뉴스페퍼민트

* 기사 속 사진은 존 필립스 제공.

This story originally appeared on CoinDesk, the global leader in blockchain news and publisher of the Bitcoin Price Index. view BPI.

[출처]코인데스크코리아 https://www.coindeskkorea.com/rojavaaiki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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